24.04.06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김대건 신부님을 따라가는 성지순례를 하다
1. 한덕골 - 모진 박해를 피해 모인 교우들의 보금자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4리에 위치한 한덕골은 박해시대 천주교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순교사적지이다.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아드레아(1821-1846) 신부 가족들은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이곳으로 피난와서, 처음에는 기거할 잡이 없어 마르 근처 성애골(현재는 매몰되었음) 골짜기에 들어가 산 나무와 산나무에 칠으로얽어매고 억새풀을 덮고서 살았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한덕골 출신 순교자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성 김제준(이나시오 1795 -1839)을 비롯하여 김시몬, 김 마리아 등이 있다.
2. 이윤일 요한 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묵리
성 이윤일 요한 은 181년 홍주의 열심한 구 교우집안에서 태어나 1865년 12월 고향을 떠나 경남 상주 갈로 이주했다가, 부친이 별세한 후에는 문경 여우목으로 이사하여 살면서 30여 호를 입교시키는 등 공소회장으로서의 소입을 다 하였다. 병인박해가 일어나 1866년 11월 18일 , 마을을 습격한 포졸들이 신자가 누구냐고 묻자, 그는 태연히 "내가 바로 천주교 신자요"라고 대답한 뒤 마을 교우 30여명과 함께 문경 관아로 끌려갔다. 3일 동안 심한 형벌을 받은 다음, 다시 상주 진영으로 이송되어 2개월간 수차례의 심한 형벌을 받으면서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단호하게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도리어 기도와 묵상을 열심히 하는 한편 함께 갇힌 교우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결국 사학의 괴수로 1867년 1월 4일 사형선고를 받고 대구로 압송 되어 , 그 해 1월 21일 관덕정으로 끌려나가 순교하였다.
3. 골배마실 성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 경기도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810
무덤이 있는 미리내 성지에서 산길로 30리, 찻길로 80리 거리에 위치한 곰배마실에서 그 옛날 김대건 신부는 그의 나이 15세 때 신학생 후보를 찾아 해매던 모방 신부에 의해 장래 조선 교회를 이끌 목자의 재목으로 선택 된다. 그리고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준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4. 은이 성지 - 성 김대검 암드레아 신부의 첫 사목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 2
은이 공소터는 한국 교회사 안에서 솔뫼나 미리내만큼이나 귀중한 순교 사적지이다. 하지만 교회의 무관심 속에 이쒸개 공장과 잡초만이 무성한 텃밭으로 한동안 변해 있었다. 그러던 중 1996녖 은이 공소터 530여 평을 매입하고 야외제대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상을 세우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성지 개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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