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2 김대건 신부님 발자취를 따라서 서울 석정동돌우물골, 서소문 순교성지, 마포나루터, 인천 제물진두성지, 해안성당을 순례하다
1. 서울 석종동 돌우물골
병오년 (1864년) 일성록과 포도청 문초 기록 등을 보면 김대건 신부는 한양 동우물골에서 살았다.그가 부제 때 페레올 주교의 거처로 마련한 바로 그 집이다. 김 신부는 가난하고 의탁할 곳 없던 자샌의 복사인 이의창(베난시오)에게 그 지에 살면서 관리하도록 했다.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 집은 페레올 주교의 거처로 마련했기 때문에 김대건 신부뿐아니라 페레올 주교와 함께 살았을 정황이 크다. 곧 돌우물골 이의창의 집은 조선대목구청이자 페레올 주교의 주교관이며, 김대건 신부의 사제관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사제로 처음이자 마지막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소는 지금의 소공동 조선호텔이다. 좀더 장소를 확대하면 롯데 호텔과 롯데백화점 주차장 일원까지 포함힐 수 있다.
2.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 한국 최대의 성인과 복자 탄생지
1984년 이 땅에는 103위 순교 성인이 탄생이라는 세계 교회사상 드문 하느님의 역사가 나타났다. 순교자들의 피로 세운 신앙의 터는 오늘날 루리 신앙인들의 가슴속에 굳건히 살아있다. 이들 103위 순교 성인들 중 44명의 성인과 함께 수많은 순교자들을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가 바로 서소문 밖 네거리이다.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된 124위 순교 복자 중에도 27위가 바로 이곳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서소문 밖은 바로 임금의 궁성이 있는 한양의 공식 처형지였다.
3. 서울 대 교구 새남터 순교 성지 - 최초의 선교사가 목을 떨군 곳
한양성 밖 남쪽 한강변에 있던 새남터는 본래 노들 혹은 한자로 음역(音驛)해서 사남기(沙南基)라고 불리었다. 이 자리는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됐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곳은 1456년 (세조 2년) 에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던 사육신이 충절의 피를 뿌린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4세기를 건너뛴 1801년 부터 1866년까지 무려 10명의 외국인 사제를 포함한 11명의 목자가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리다.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평신도들의 순교지'한라고 한다면 이곳은 '사재들의 순교지'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 선교사로는 처음 한국 땅을 밟은성 앙베르 주교, 성 모방과 샤스탕신부가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20일 후 신자들의 노력으로 시신이 수습되어 노고산 서강데학교 뒷산에 안장되었다. 그런 뒤에도 1846년 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순교하였고, 같은 해 성 현석문 가롤로가 다시 망나니의 칼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병인 박해 때에는 베르뇌 주교를 비롯하여 모두 6명의 프랑스 선교사들과 우세영 알렉시오, 정의배 마르코 성인 등이 이곳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중에서 정의배의 시신은 가족들이 수습하여쏘, 나머지 시신은 신자들이 거두어 왜고개에 안장하였다.
4. 마포나루 - 대건 등 라파엘호 승선자들
김대건 부제는 페레올 주교가 지시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1845년 4월 30일 조선대목구 재산인 배를 타고 마포나루를 미끄러지듯 빠저나갔다. 목적지는 중국 강남이었다. 페레올 주교를 이곳에서 만나 이 배로 조선에 입국시키는 것리 려행의목적이었다. 현석문 가롤로와 이내의 토마스, 최형 베드로, 임성실, 임치화, 노언익, 임인원 등 11명이 배애 같이 탔다. 이들 중 임성룡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임성실과 노언익 4명만이 사공이고, 나머지는 바다를 본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5.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성지 - 선교사들의 거점이자 인천지역 최대 순교터
1800년대 중후반 홍성대원군이 조선을 통치하던 시기, 조선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서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때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인천지역듲 서양세력이 조선으로 드나드는 관문이자, 선교사들에게는 선교 활도의 거점이 되었다. 하지만 외국과의 통상과 이질적 사상의 침투에 완고했던 조정은 외세와 함께 처누교 신자들을 조선 침략의 공범으로 내세워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인천 제물진두(祭物津頭)에서는 우리나라 첫번쩨 영세자인 이승훈 베드로, 의 증손자인 이연구와 이균의 등 열 명이 처형되었다. 이곳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임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본 후 인근의 포구에서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난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또한 1888년 7월 22일 에는 제7대 노선 대목구장 블랑 주교의초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 수녀 4명이 이곳 제물포항을 통해 순교자의 땅인 조선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로써 조선에서 처으므로 수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천지역 최대 순교터 위에 건립된 순교기념 경당은 대지면적33평, 건축면적 13평 규모릐 자상 1층 구조로, 차이나 타운 입구 한중문화 바로 왼편에 15m높이로 건립되었다. 우리는 인근, 해안성당에서 성모신심 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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