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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오성바위, 아산 신창 척화비, 보령추청 수영성, 갈매못) 성지를 순례하다.

1.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삼거리 오성바위  - 충남 아산새 염치동 동정리 10-12 (동정 삼거리)      1866년 3월 30일 걸매못에서 순교한 서 안토니오다블뤼, 성 오메트로 오벧드로, 성 위엥 마르티노 루카, 성 황석두 루카, 성 장주기 요셉 성인이 한양에서 군문 효수형을 언도 받고 갈매못으로 가던 도중에 지금의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 3거리에 있는 오성 바위에서 잠시 쉬어었다. 이 바위는 한때 "복자바위"로 불렀으나 1894년 성인품 이후 오성바위로 불린다.지금은 서울 절두산 순교자 기념 성당  정원에 있다. 2. 아산 신창 척화비 - 충남 서산시 신창읍 읍내리 357(아산시 신창현 역사공원)     척화비란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흥선 대원군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르면서 더욱 의지를 굳혀..

종교 이야기 2024.09.09

24.07.05-07 논산 씨튼 영성의 집에서 향심기도 피정을 하다

7월 5일      2:40  접수 및 배정      3:00  오리엔테이션      3:10   강의1     4:20   강의 2     5:00   기도실습(20분                      5:30   저녁식사(침묵)      6:40   강의3      7:40   기도실습(20/30분)7월 6일      06:00   향심기도(20/30분)      07:00    미사     09:20   강의 4      10:40   향심기도(20/30분)     12:00   점심                  14:00   강의5     15:10   향심기도(20/30분)      16:30   강의 6    17:30   저녁식사(침묵)                       18:40..

종교 이야기 2024.07.08

20.24.0608 서판교 성당 정의에 거울 단원들과 성거산 성지를 순례하다

.24.06.08  서판교 성당 정의에 거울 cu 단원들과 성거산 성지를 순례하다.     08:00  본당 출발      10:00   성거산 성지 제3 주차장 도착          10:00 - 11:00   병인박해 기념 성당 탐방 , 단체 사진         11:00  -  13:30    미사  점심              13:00  -  14:00   서학골 교우촌 터    십자가의 길         14:00 -  제1.2줄 무덤, 성모광장,                  15:00   출발             17:00   성당 도착

종교 이야기 2024.06.11

24.05.04 프란치스코 성지순례 회원들과 김대건 신부를 따라가는 성지순례 (여사울, 해미국제 성지, 미리내 성지)를 가다

24.05.04  프란치스코 성지순례 회원들과 김대건 신부를 따라가는 성지순례 (여사울, 해미국제 성지, 미리내 성지)를 가다. 1.여사울 성지 -  내포 사도 이존챵 루돕코가 살던 곳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 여사울길 22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李存昌, 1759-1801) 의 생가 터가 있는 여사울 순교 사적지는 신례원 본당의 공소를 거쳐 2008녀 성지 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주민의상당수가천주교 시자로 구성되어 있는 선교의 요람이다. '內浦'라 함은 충남 아산에서 태안에 이르기 까지의 평야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삽교천과 무한천의 두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서부 지역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이 지역은 이종창을 비롯해 복자 김진우 비오, 성 김대건 ..

종교 이야기 2024.05.05

24.04.19 재경 광6회원들과 4.19민주묘역을 참배하다

북한산 우이역에서 10:30분에 만나 서울 둘레길을 따라 솔밭 공원을 거쳐 4.19 민주묘역까지 걸어갔다. 국립 4.19 민주묘는 1960년 4월 19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부정과 부패, 독재 권력에 항거하여 싸우다 희생된 분들이 자들어 게신 성스러운 곳이다. 4.19혁명은 8.15광복절과 남북 분단 이후 누적된 정치 사회적 모순에맞서 학생과 시민이 주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당시 정권의 독재와 부저선거를 강력 규탄하여 정권교체를 촉발하였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나의 이야기 2024.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