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야기

17.03.25 우리 꾸리아 단원들과 함께 남한산성 순교 성지를 가다

소광선생 2017. 9. 23. 19:20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이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   굳은 신앙으로 /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마리아와 함께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까지  /   널리 펴시도록 빌어주소서.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어, 특별히 청하오니  /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덩산들은 이 땅에서  고난을 겪으시며 사시다가  /  목숨까지 바치셨사오니


  전능하신 하느님게 빌어주시어  /  교회를 이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

  사제를 많이 나게 하시고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  냉담자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  간절히 총허오니 /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 주소서.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  예수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  

  주님의 은총을 얻어 선종하게 하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남한산은 북한산에 대치되는 이름으로서, 한수 남쪽의 큰 뫼라는 뜻으로 한산이라고 불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온조왕 13년 7월 한산 아래에 성책을 쌓고 민호를 옮겨 이를 하남 위례성이라 하였으며, 근초고왕 26년에는 한산으로 도읍을 옮겨다고 한다. 그 후 신라가 한산을 요충지로 주목하고, 문무왕 12년( 672년) 에 이곳에 성곽을 쌓으면서 주장산성이라 불리었고. 조선초기 세종실록에서는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여진족의 족장 누루하치가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운 후 남침을 시도하면서 이를 대비하기 위해 광해군 때에 성을 정비 보수하였고, 1624년 인조는 총융사 이서로 하여금 산성을 본격적으로 신축하도록 하엿다. 1626년(인조 4년) 성을 완공한 후 소어청과 광주 관아가 남한산으로 옮겨지면서 남한산성은 광주부의 치소가 되었다. 이로부터 남한산성은 동쪽으로 양근의 용진, 서쪽으로는 안산의 성곶이, 북쪽으로는 한강, 남쪽으로는 이천의 양지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통치하였고, 주변 여흥, 이천, 양근, 음죽, 과천, 천령, 지평, 금천 등의 고을 을 관할 하렸다. ㅂ795년 (정조 19년)에는 행정, 군정의 일원화와 경비 절감 등의 이유로 수어청을 없에고 유수제를 확립하여 이후 한말까지 유수(정2품)가 임명되었다.

  이처럼 광주 유수의 치소가 이전되고 포도청과 여러 관멍이 자리하게 되면서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고, 박해 때마다 광주부 여러 지역에서 천주교 교우들이 끌려와 순교함으로써 잊을 수 없는 '순교 터'가 되었다.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 박해(1791년)때부터  교우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었고, 신유박해(1801년) 때부터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가 탄생하였다. 이어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후기에 이르기까지  70년간 300여명의 천주교 교우들이 순교하게 되었다. 그 중 현재 그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순교자는 36명이다.


  현지 성당 내의 마리아 상 - 현지 성당에는 성체가 현시되어 있으며 두분의 성인 유해가 ( 김성우 안토니오, 최경환 프란체스코) 모셔져 있고, 성지순례 미사 전례시 양형 영성체를 하고 있다.


포도청 터 - 남한산성으로 체포되어 온 교우들이 포도청에서 1차적으로 심문을 받은뒤, 배교하지 않은 교우들은  옥에 갇혔다. 행적이 밝허진 38명의 순교자 중 19명이 옥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무관 -  중군과 종 5품 판관에 의해 심문과 고무, 그리고 형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순교자드르의 신앙고백이 울려 퍼지고 죽음으로 증거한 순교 터이다.


 성곽 미트로 뚤어진 수구문 - (제 11문 동암문) - 남한산성으ㅏㅣ 11번째 암문으로 장사나 옥사로 성안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시신이 이 문으로 나가 걔곡에 버려졌다. 순교자들의 시신은  ㅅ 십일씩 방치되었으며 짐승들에 의해 훼손되었다.




  성곽 미트로 뚤어진 수구문 - (제 11문 동암문)




야외 미사 터 - 십자가의 길과 1000여명이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성당 내의 십자가의 길 14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