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인생은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마지막 근무처인 광주 수문초등학교 교장 직에서 정년퇴임으로 은퇴해 나올 때 내 마음은 급했다. 앞으로 다가올 내 인생의 후기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의미 있고 보람에 찬 인생 후기를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준비 없는 퇴임을 하였으나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 오히려 더욱 바빠졌다. 그 가운데 하나는, 대단한 인생살이는 아니었지만 내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고 재음미 하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이겠다 생각되어졌다. 그래서 남에게 내보일만한 특별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자는 용기를 냈다.
“나는 바란다. 투쟁도 뉘우침도 없이 운명이 이끄는 쪽으로 마음 조용히 곧 바로 인생행로를 가고 싶다.”고 한 베를렌의 토로처럼 나는 내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내 귀로 내가 듣고, 내 눈으로 내가 보고, 내 입으로 내가 말하고, 내 코로 내가 냄새 맡고, 내 손으로 내가 쓰고, 내 발로 내가 행하고, 내 몸으로 내가 일하였으니 내 인생 이만하면 행복하였던 것도 같다. 무엇을 더 욕심내고 아쉬워 할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너무 보잘 것 없고 범속하여 유형무형의 남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허탈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의 후세에게 뿌리 교육의 자료라도 남기고 싶어, 티끌 같은 흔적이라도 내보이고자 하는 몸짓으로 의욕을 가져보았다. 내가 살아온 삶을,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생활을 마치기까지를 전기, 직업을 갖고 공적인 사회생활을 마치기까지를 중기, 퇴직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나머지 인생을 후기로 나누어 되돌아보며 행적 연보 수준의 글일망정 성실한 자세로 써보기로 용기를 냈다. 그러나 이제 기억력도 쇠퇴하고, 모아둔 자료도 너무 빈약하여 의미를 주기는커녕 피상적인 글이 될듯하여 걱정이 밀려오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인간은 대자연의 섭리아래서 ‘소우주의 존재로 태어나는 신비한 존재’라고 하는데 내 인생의 어디에서도 내 의지대로 이루어 낸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되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예견이나 한 것처럼 일찍이 나는 좌우명이자 가훈을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으로 정했었다. 인생이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결정되어 지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살아온 삶이었다.
‘인생, 계획은 사람이 하나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라는 성경 구절을 다소나마 알아가는 삶이었다고나 할까? 그러하였음에도 나는 나의 인생을 하느님께 완전히 맡기지 못하고 항상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하고 자주 포기하고 게으르며 자신 없는 삶을 살아왔었다는 후회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중국 고사에도 이런 말이 있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즉, 세상사 삶을 도모하는 건 사람이지만, 그 뜻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이 고사는 삼국지에 나오는 일화로 제갈 공명이 ‘사마의’와 싸울 때, 그의 지략으로 사마의의 군대를 호로계곡으로 유인하여 포위하고 화공(포탄으로 공격)으로 치려하지만, 모든 계략이 원만하게 진행되었으나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퍼부어 사마의의 군대를 치지 못하고 말았다. 천하의 ‘재갈량’도 쓸쓸히 돌아가며 “모사재인이로되 성사재천이로다.”라고 탄식하였다고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사는 일이란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그뿐 결과에 연연할 일은 아니라는 교훈일 것이다. 나는 문득 이글을 쓰며 옛 고사를 생각해 내고 또 한 번 옛 선인들의 통찰을 깨닫고 마음에 깊은 울림이 솟구쳐 오름을 느낀다.
* * *
그래서 이 책은 기적적으로 내게 인연 맺어진 내 후세들에게 하나의 단서라도 제공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며, 내게 다가와 사랑과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분들에 대한 헌사이고, 내 삶의 고비 고비마다 큰 가르침과 힘을 주신 분들에게 큰 절로 감사를 드리려는 마음의 발로인 것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뜻은 좋았다 하더라도 때로는 많은 잘못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로 인해 상처 받았거나 고통당한 선배도, 후배도, 동료도,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정중히 사죄하려는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못난 이 사람의 곁을 지켜준 아내는 이 책의 숨은 주인공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배려가 없었던 아버지를 탓하지 않고 꿋꿋하게 잘 자라준, 사랑하는 아들 태훈이와 딸 나영이에게도, 태훈이를 뒷바라지 해주는 며느리 안 소연과 나영이를 이끌어주는 사위 수현이에게도, 또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바른 삶의 길을 보여주시며 불꽃 같이 살다가 5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시어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못 받으신 아버님에게도, 그리고 너무나도 착하시고 정직하셔서 ‘살아 있는 보살’이라 칭송을 받으셨지만 나 보기에 소심하셨고 의지가 약하셨던 어머님께도, 더불어 내 삶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형제자매에게도 이 책을 바칩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감사해야 할 분은 지금 이 책을 펼쳐 보시는 바로 당신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삶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고 설파하신 法頂(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한 대목을 다시 되새기며 저 또한 그렇게 떠나가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5. 11. .
죽산제에서
(1992. 02 전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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