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쓰는 유언장
아들과 딸에게
당부의 말(유언장)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벌이는 또 하나의 독선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제대로 남길 큰 재산도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나 자신까지도 의심스럽다. 유산은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싶다.
요구하지도 못했겠지만, 요구하는 걸 못해준 경우도 적지 않았고 가족여행을 떠나, 함께 모여 따뜻한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점에도 용서를 빈다.
박봉의 말단 공무원으로 너무나 선량하셔서, 분가할 때 받으셨던 논밭까지도 시골 정치판에서 힘들게 되신 형님에게 다시 되돌려 주셨으며, 살아가실 주택 구입 자금을 복덕방에, 인척이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친척에게 그냥 맡기셨다 사기를 당하셨을까? 광주광역시에서도 변두리인 월산동 산동네에 조그만 한식 주택 한 채만 되돌려 받으셨던 나의 아버지. 가정에서는 독선적이고 괴팍하셔서 장남인 나에게도 배려는커녕 도움이나(?) 바라시던 아버지! 그래도 이 집은 미안함 때문인지? 1가구 2주택 때문이었는지? 유산인지? 내 이름으로 해 두셨던, 나의 아버지!
반면에 바보처럼 정말 바보처럼 마음씨 하나만 좋으시고, 세상 물정일랑 관심도 없으셨던……어머니. 내가 군대 갔다 오는 동안 새끼 돼지라도 구입해서 키워 달라고(그 시절 시골 사람들의 재산 증식 방법) 맡겨드린 내 첫 월급마저 외삼촌에게 맡겨 놓고는 확인도 회수도 하지 못하셨던…… 나의 어머니! 그 분들은 나에게 선함과 정직과 성실함을 무엇보다 큰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제대로 시간도 내지 못했고, 무언가 큰 가르침도 남기지 못했으니 그저 미안하게 생각할 뿐이다. 그래도 이 아빠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죄를 짓거나 욕먹을 짓을 한 것은 아니니 그것으로나마 작은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할머니의 선한 심성과 행동들이 아빠의 삶의 기반이 되었듯이 내가 인생에서 이룬 작은 성취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른 생각들이 너희의 삶에서도 작은 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든 너희의 결혼식까지는 치러주는 것이 내 책임이요 의무라고 생각 했었는데 거기까지 끝낼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아들, 딸아! 나는 꿈을 크게 갖지 못해 초등학교 교장으로 끝나는 것이 한이 된다. 물론 그 점도 있지만, 초등학교 교장으로 끝이 나서 한스러운 것이 아니라 더 멋있는 교사와 교장이 못되었던 것이 한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희는 큰 꿈을 갖고 노력하여라. 인생은 꾸는 꿈 이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은 마라톤 같은 것이다. 언제나 꾸준히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더구나 인생은 그렇게 돈이나 지위만으로 평가 받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신의 인생, 자기의 최선을 다해 제 인생을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너희는 돈과 지위 이상의 커다란 이상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그것이 아빠처럼 끝내 하느님을 믿고 안식을 얻는 일일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아빠가 큰 유산을 남기지 못한 것을 오히려 큰 유산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의지 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예레미야 17장 5절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현세에 가난한 자로 보여진다고 해서 부끄러워 하지 마라. 너 스스로를 의지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 의탁하여라.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하느님께서는 너의 선함을 보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너의 지식이나 다른 누구의 지식에도 의지하지 말고 겸손한 자를 돕고 거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하느님의 은총에만 의지 하거라.
말년에 노환과 암 투병으로 고생하셨던 나의 어머니! 즉, 너희들의 할머니를 함께 모시지 못하게 되어 너희에게 효행의 본을 보이지 못한 점, 부끄럽구나. 하지만, 이유는 있다. 내가 시골학교 근무를 마치고 광주광역시 근무를 하게 된 1982년도 기거할 곳이 없던 나는 할아버지 집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죄송함을 금 할길 없어 아버지에게 “조금만 기다렸다 크고 넓은 단독 주택을 구입 해, 모두 함께 삽시다.”라고 말씀드렸고 기꺼이 찬성해 주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너는 결혼까지 시켜놓았더니 지금도 나이든 어머니 밥이나 얻어먹고 사느냐”고 꾸짖으셨다. 나는 그 즉시 아파트를 계약했고, 모두 함께 살고 싶었던 나의 대가족제의 꿈도 멀리 갔다. 그 후 할아버지는 미성이 고모까지 결혼을 시키는 일을 끝으로 너무나 빠른 연세에 지병이신 심장병으로 돌아가셨고, 너희 할머니는 아버지께서 남겨 주신 퇴직금 등으로 자식들의 안녕을 빌기 위한 불교에 심취하여 사셨다.
종교문제 때문이었는지? 그 동안 쌓인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나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셨는지? 몇 푼 되지도 않는 할아버지의 퇴직금 때문이셨는지? 아파트에서 함께 살자는 나의 여러 번의 제의를 극구 거절하셨고 삼촌, 고모들까지도 함께 월산동 집에서 사시는 것을 고집하셨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까? 황당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는 언급하기도 싫었다.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었고, 고혈압, 당뇨, 혈관이상, 망막 황반변성, 위장병 등의 투병으로 너희들 어머니가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으니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모든 일에는 알맞은 시기(적기)가 있다는 교훈이다.
지금은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니, 내가 늙어 기동력이 떨어지더라도 나를 모실 생각은 전혀 말고 (모시지도 않겠지만) 편안하게 빨리 세상을 하직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 하거라. 그것이 나에 대한 너희들의 마지막 효도이다.
끝으로 너희에게 몇 가지의 당부를 남기니 최선을 다해 지키도록 하고 가훈으로 대를 이어 갔으면 좋겠다.
첫째, 행복은 이벤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모여 함께하는 밥상머리에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행복하여야 그게 행복인 거지, 일상은 늘 불행하고 ‘나는 왜 이렇게 힘들까?’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외식이나, 여행을 하고 승진이나 하며,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면 그게 꼭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거다
둘째,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가져라. 편법과 게으름은 자신을 좀먹는다.
셋째, 찡그리기보다 많이 웃어라.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
넷째, 진실만을 입에 담아라. 신뢰는 진실에서 나온다.
다섯째, 모르면 물어라. 이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항상 인정하고 명심하라는 말이다.
여섯째, 나에게 인색하고 남에게 후하게 대하라. 가지지 못한 사람을 배려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질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일곱째, 말하기보다 많이 들어라. 신중하고 세심하게 들어주는 것 자체가 강력한 리더십의 표현이다.
여덟째,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문제를 미워하라.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다. 비난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감정은 반발을 불러온다.
아홉째, 자식들의 교육은 엄이자(嚴而慈)하여 본인이 평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하나만을 찾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잘 찾아 정말 잘 할 수 있도록 본인이 노력하고, 선생님이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니, 그러면 명예와 부는 저절로 따라 오는 것이다. 이는 40여년 나의 교육 경험 결과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잘했으면 하는 욕심은 교육을 병들게 한다.
열째, 하는 말, 듣는 말에 사랑을 담자. 누군가는 들은 말로 평생을 살며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이는 가훈으로 정해놓고서도 내가 잘 지키지 못하여 한이 된 내용이니, 한 구절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라는 뜻이다.
아내에게
평생 ‘아내’라는 말, ‘당신’ 또는 ‘여보’라는 말 한 마디조차 쑥스러워 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아내’라고 써 놓고 보니 내가 그 동안 당신에게 참 잘못했다는 반성부터 앞서는 구려.
진도 허씨 명문가의 둘째 딸로 곱게 자란 당신이 일상의 행복이나 평온 대신 교직 동료로서 6남매의 장남인 나의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주느라고 애간장이 녹았을 당신에게 유언을 할 자격이나 되겠소? 오히려,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매사 어려운 일일랑 당신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하던 내 무능함과 태만함에 대한 나의 참회문이라 해야 적당할 것이오. 그래도 적으나마 수입이 있던 시절 우리가 못 먹고 못 입고 알뜰하게 모아서 당신의 도움으로 아파트를 사고 퇴직금의 일부로 키운 지금의 이 아파트, 나주에 있는 중흥 리조트 회원권, 연금을 제외한 퇴직금으로 조금의 여윳돈이 있으니 당신이 마음껏 쓰시다가 남는 것이 있다면 친손주와 외손주의 수에 따라 등분하여 남겨주면 어떨까? 생각하오.
자녀를 많이 둔다는 것은 천륜과 인륜, 효심에서 나오는 결과일 터이니 말이요. 한 자녀 이상을 생산하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리 교육비가 많이 드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한 자녀 건사하기에는 충분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니, 모두 자녀가 많아 힘들어하는 가정에 희사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하오. 어떻든 모든 결정권은 이제 당신에게 있소. 생각 같아서는 불쌍한 이를 위해 사회에 모두 기부하고도 싶었지만 액수도 적고, 유산을 대물림하는 것이 자랑이 되는 세상이라서 물려주려는 생각을 했으니 참고 하시오. 정말로 얼마 되지 않은 유산이지만 이것을 종자돈으로 아들과 딸이 조금이라도 여유로워진다면 나 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하도록 지도해 주기 바라오. 내 평생에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점이 한이라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남기신 광주 월산동 집은 특별히 장손(태훈)에게 주어 별도로 조상을 돌보는 일에 쓰는 종자돈이 되도록 하시오. 종교가 어떻든 조상에 무관심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오. 내가 여유가 있었다면 명당을 찾아 조상의 선영을 멋지게 가꾸고 싶었는데 내게 여유와 능력이 없으니 말도 꺼내지 못한 것도 한으로 남아 있오. 살아생전 내 의사를 거스른 적이 없으니 당신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해주리라 믿소. 죽은 후에는 나의 육신은 고혈압과 당뇨병, 위장병, 혈관이상으로 쓸 만한 장기가 있을지 모르지만 쓸 만한 것이 있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증하고 싶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 아직 장기 기증 철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오면 절차를 밟을 생각이니 그렇게 해주오.
끝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나면 더 건강하고 영리하며, 예쁘고 투철하고 명랑하고 쎈스 있는 사람으로 후회 없는 인생을 함께 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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