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 10 ~ 08:15 신부님 강복 08 : 15 ~ 10 : 00 성지 도착 10 : 00 ~ 11 :00 십자가의 길
11 : 00 ~ 12 :40미사참례 12: 40 ~ 14: 40 외푀리 횟집 점심 식사 17: 00 성당도착
강화도는 한국 천주교의 초기부터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1975년 조선 최초 선교사로 입국한 주무모 신부가 철종의 조모 솔씨(은언군의 처)와 며느리 신씨에게 세례를 준 것이 조정에 알려져 , 왕족이었던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게 되다. 이로 인해 강화도에 귀향해 살던 철종의 조부인 은언군도 처형되었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가 유입 될 때 이용되던 육로 통행이 여의치 않게 되자, 1845년 5월 1일 기대건신부는 페레올 고 주교의 명으로 선교사를 비밀리에 입국시키는 해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울 마포를 떠나 강화 갑곶 앞바다까지 오게 되었다. 그 후로도 1856년 베르뇌 장주교와 쁘띠니콜라 신부, 쁘르띠에 신부, 1857년 폐롱 권 신부 등이 비밀리에 입국한 요로가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로 강화도에서 수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1866년 프랑스 선교사를 입국시키는데 협력한 최인서, 장치선 회장과 박서방(박순집의 형), 조서방 등이 서울 포청에서 옥살이를 하다 강화 병영지 진무영으로 호송되어 효수 당하게 된다.
1866년 대동강에서 통상을 요구하던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가 불에 타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는 빌미로삼았고, 이후 미국은 1871년 강화도를 공격하였는데, 이를 신미양요라고 한다. 특히 갑곶 나루터는 당시 많은 신자들의 목을 베어 말뚝에 달아매는 효수터가 되었다. 이 때 미국 함대에 왕래한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등이 첫 번째로 잡혀가 이곶 갑곶진두에서 효수되었다.
인천교구 선교자현양위원회는 문헌상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ㅣ를 찾아 지금의 갑곶순교성지를 조성하였다. 이후 2001년 9월에는 순교자들의 행적 증엊이며, 인천교구 역사의 증인인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를 성지 내에 안장하고, 이후 사제를 파견하여 순례자들의 신심을 돕고 있다.
현재 갑곶성지에 박상손, 우윤집 , 최순복 3위비가 모셔져 있으며, 박순집 베드로의 묘가 안장되어 있다.
'종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07.01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을 따라 청주교구 배티 성지를 가다 (0) | 2023.07.02 |
---|---|
23.07.01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을 따라 성거산 줄무덤 성지를 가다 (0) | 2023.07.02 |
23.06.03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웡들과 대전교구 청량 다락골 성지에서 1일 피정을 하다 (0) | 2023.06.04 |
23.05.06 프란치스코 성지순례 회원들과 수원교구 수원성지(수원화성, 북수동성당),죽산성지, 미리내성지와 청주교구 배티성지를 두 번째 순례하다 (0) | 2023.05.17 |
23.05.03 프란치스코 성지순례 회원들과 서울교구 관내 성지를 도보로 순례하다. (0) | 2023.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