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7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최양업 신부님을 따라가는 성지순례 한덕골, 손골, 하우현, 수리산 성지를 가다
23.10.07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최양업 신부님을 따라가는 성지순례 한덕골, 손골, 하우현, 수리산 성지를 가다
한덕골 성지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목 4리에 위치한 한덕골 성지는 천주교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敎友村을 이루고 살았던 순교사적 지이다.
한국인 첫 사제인 金大建 안드레아(1821-1846년) 신부 가족들으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사리 ,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이곳으로 피난 와서, 처음에는 기거할 집이 없어 마을 근처 성애골 (현재는 매몰되었음) 골짜기에 들어가 생나무와 산나무에 칡으로 얽어매고 억새풀을 덮고서 살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지고 있다.
이곶 한덕골 출신 순교자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부친 김세준 이나시오를 비롯하여 김시몬 , 김마리아 등이 있다.
손골 성지
손골 성지는 수원시와 용인시에 거려 있는 광교산(582m) 기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로 437번길 67에 있다. 원래 손골 성지에는 교우촌이 있었다. 교우촌은 천주교 박해시기 박해를 피해 신자들만이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다. 손골 교우촌은 현재 '손골성지'하고 불리데는데 이곳에서는 프랑스 선교사로 병인박해(1866년) 떼 순교한도리(dori, 김, 헨리코) 성인과 오메트르(aumaitre, 오, 베드로) 성인을 특별이 기념한다. 아울러 박해시대 손골 교우촌에서 살았던 순교자들과 신앙선조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하우현 성당
하우현 일대에 언제부터이 교우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어쓴지 분명치 않으나 이 지방에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이 있고 거기에 형성된 계곡과 울창한 수목이 박해를 피해 살 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로, 어느 사이엔가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교우들아 때로는 따을 파고 토굴 속에서 살던 곳이었다고 하여 토굴리라고도 부른다. 다블뤼 신부는 휴양차 이곳을 방문해 신자들과 나무그늘에서 돗자리를 깔고 바라람을 쐬고, 참외나 옥수수를 먹으며 여름을 보앴다고 한다.
수리산 성지
행정굴역으로 분명히 안양시 아냥 9동, 시 중심가에서 불과 몇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적한 첩첩 산주이 나선다. 예로부터 담배를 제배해 왔다 해서 '담배골', 또는 골짜기 새임새가 병목처럼 좁다고 해서 '병목골'이라고도 불리었던 수리산은 박해시대 때 외부 세계와단절딘 천혜의 피난처 구실을 해 왔다.
김대건 신부아 함께 한국 최초의 바인 사제로 피땀 어린 사목활동을 폈던 최양업 신부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1805-1839년) 성인의 묘가 수리산 적막한 골짜기에 모셔져 있다. 이곳에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을 일구어 오다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향을 떠나 방랑해야 했던 그들 일가의 애환이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