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야기

23.07.01 프란치스코 성지순례회원들과 청주교구 봉암성지(방축골, 개마교우촌)를 돌아보다.

소광선생 2023. 7. 2. 14:33

     봉암성지는 6명의 순교자들이 살았던 방축골과 계마대 마을에서 시작된 신앙의 줄기이다.

     방축골과 계마대 마을은 1850년 전후부터 1866년 까지 천주교인들의 비밀 신앙 공동체였다. 당시 이 마을에는 김백심 암브로시오, 송균명 바오로, 김경장 , 이베드로, 민윤영 프란치스코 가족이 살았다. 방축골과 계마대 마을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께서 사목하며 첫 번째 신학생을 서발한 곳이다. 

     1866년 12월 병인박해로 마을에 포교들이 들이 닥치면서 마을의 성인 남성들은 대부분 끌려가고 남아있던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져 피난을 가면서 민윤영 프란치스코, 김백심 암브로시오의 차남 김성회 바오로는 충주에서 순교하였고, 이 베드로는 수원에서 순교하였다. 김백심 암브로시오는 서울로 압송되어 모진 매질과 심문을 받다가 순교하였다. 

     김백심 암브로시오의 장남 기성회 바오로와 마내 김 사도요한(신학생)은 천안시 북면 연춘리로 피난하였다가 1868년 서울에서 수교하였다.  현재는 순교자와 그의 가족들이 살았던 방축골과 계마대는 지명만 남아 있고 바로 옆 동네에 봉암 공소가 세워져 신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신앙의 뿌리는 1892년 정무선 요셉 회장에 이어진다. 정무선 회장은 1890년 파스키에(주 베드로)신부에게 진천 배티에서 영세를  받고 봉암 마을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으며, 마을 사람들 전체가 신자가 되었다. 서당 훈장이었던 정무선 회장은 신앙교육 외에도 마을 사람들을 교육하였으며 이것은 지금까지도이어져 마을의 농민운동및 민주화에 큰 공헌을 하였다. 

     맹동 성당 정광열 신부는 봉암공소와 신앙촌을 이루고 살았던 교우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청주 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2020년 11월 29일 봉암공소를 성지로 선포하였다. 청주교구는 공소 옆 토지와 가옥(정무선 요셉 장남이 지은 건물) 을 2020 11월에 매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