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0 성지순례 55, 대전교구 천안 성거산 성지를 가다
주소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위례산길 394 T; 041) 584 -7199
미사 : 주일 . 평일 : 오전 11시 (월요일 미사 없음 )
피정. 식사 , 숙박 (사전 예악 필요)
가는 길 ; 남안성. 평택 IC애서 출차 : 위례 사거리 좌회전 - 직진하여 성지 정상 주차장까지
천안 IC에서 출차 : 위례교차로 우회전 - 직진하여 성지 정상 주차장까지
성거산 일대는 1800년대 초부터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온 신자들에 의해 형성된 교우촌들이 곳곳에 잇었다. '학의 둥지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소학골과 인근의 서들골을 중심으로 여러 교우촌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던 신골 신앙 공동체였다.
성거산 교우촌은 산골이면서도 주변의 다른 신앙 공동체들과 연락을 취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런 까닭에 프랑스 선교사들이 성거산에 와서 휴식과 사목 활동을 하며 편지를 작성하여 본국으로 보냈고, 주변의 공주와 서천, 충북 배티, 경기도와 경상도의 교우촌드롸 연계도 가능했다. 이곳에서 활동한 성직자는 다블뤼 주교, 최양업 신부, 메스트르, 폐롱, 프티니스콜라 신부 등 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시기에 마을에서 살 수 없었던 신자들의 이주 현상이 일어나면서 형성된 교우촌과 교우촌에서 사목 및 활동하셨던 선교사들(칼래 신부위 충청, 경상, 셩기, 사목활동 중심지)그리고 교우촌에 살던 신자들이 잡혀 순교하신 순교자들로 요약할 수 있다. 교수형에 처형된 무명 순교자들의 묘 74기 (제1 줄무덤 38기, 제2 줄무덤 36기)가 있다. 줄무덤에는 1866년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배문호 배드로 , 최천여 배드로 , 최종여 라자로, 고의진 요셉 (이상 4분은 하느님의 종 132위에 속함) 최씨 며느리 등 5명의 시시ㄴ과 무명 순교자들이 안장되어 있다.
최천여 베드로와 동생 최종여 라자로 ( 죽산 하느님의 종 최재근 안드레아의 아버지, 1910년 서품자 최문식 신부의 조상)
최천여는 소 목천 학골에 살다가 병인년 10월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잡혀 관청에 끌려 들어가 갖은 고문과 박해를 당하엿다. 배교한 교우들을 찾아다니며 '금세는 잠간이요,후세의 세계는 영원하니 어지 잠시 살기 위해 배반하느냐.' 설득하다가 54세료 치명하였다. 아우 최종여 라자로는 형과 함께 열심히 수계생활을 하다가 병인년 10월에 목천 표교에 잡혀 공주 진영으로 끌려가, 형 베드로와 같이 나이 41세로 치명하였다.
문호 베배드로와 고의진 요셉 : 하느님의 종 132위
목천 소학골에 살다 병인년 10월에 목천 포교에게 함께 잡혀 병인년 11월 초파일에 치명하니 배문호 23세였고, 요셉은 19세였다. 베드로가 모친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어머님도 뒤를 따라 오소서, 동곳(머리를 감아 상투 꽂는데 필요한 기구) 을 보시며 저를 생각해 주소서, 나와 고 요셉은 이곳 감명에서 너무 목말라 오줌으로 푸나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