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part 3 1. 교감 자격증 손에 쥔 광주 선광학교 시절

소광선생 2017. 4. 6. 16:19

           

                         교감 자격증 손에 쥔 광주 선광학교 시절

 

    19980301자 아내의 광주 동림 초등학교 발령과 함께 나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특수학교인 광주 선광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첫 부임을 하던 날, 교대 동창 친구가 교감으로 승진 발령을 받아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 동기생 친구가 상사라는 사실이 나의 자존심에 다소의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것은 나에게 행인가? 불행인가?’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 이는 나에게 있어 행운이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본교는 초등학교 전 학생이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특수아를 위한 학교이기 때문에 근무자세가 전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학교의 모든 학사 일정 및 내용은 일반 학교와 같지만 특별한 개성을 가졌기에 학습지도 방법, 학습 자료의 활용도 특별해야 하고, 식사지도, 생활지도등, 잠시라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안 되었다. 옷을 입은 채로 실례하기를 빈번히 하는 그들의 대소변 지도, 잠시라도 관심을 놓치면 일탈하는 그들의 생활지도 등 모두가 특별해야 했다.

 

                                 봄운동회를 마치고 교직원 일동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가르치겠다.’ 고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책임과 의무로 가르치기 일쑤였다. 되돌아 정신을 차려 내 사랑의 부족함에 자주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세상에 당당히 나아가 일반인들과 하께 살아가야 할 당면 과제를 갖고 있기에 현장체험 활동을 자주해야만 했던 그 시절의 특별한 교육활동, 수많은 이야기꺼리 등이, 지금은 모두 추억이 되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두는 그들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존경스러움에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의 천사가 바로 이들이 아닌가? 생각하고,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지도한다고 하였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너무나 순수해서 사랑할 수밖에 없던 우리 반 학생들

 

    나는 이들의 바람직한 교육을 위해 국립 특수교육원에서 특수교육 일반 연수와 직무연수를 받았고, 경상북도 내 특수학교를 돌아보는 특수교육 현장연수에도 참여하였다.

    일반 연수활동으로 컴퓨터교육 전문과정, 교육정보화 일반연수 및 강사요원연수, 통일교육 일반연수를 받았으며, 대외적으로는 교단선진화 지도위원, 교육부 지정 인성교육 자율 시범학교 지도위원, 청소년 과학경진대회 심사 및 관리위원, 특수학교 1종 교과용 도서편찬 연구위원, 특수교육자료 전시회 심사위원, 7차 교육과정 편성 운영지침 작성위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교육연구 활동에도 노력하여 3급 교육정보 활용능력, 전국 현장연구대회 2 등급 수상과 특수교육 일반연수 우수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승진이 지상목표이던 그 시절, 나는 교육 전문직 임용후보자 선발 시험에도 응시하였으나 고배를 마셨다. 여기에도 기적 같은 사연이 있다. 필기시험이 끝나고 컴퓨터 활용 능력시험을 보는 시간이었다. 시험지를 받아 들자말자 타이핑을 끝내고 제일 먼저 퇴실하였다.

    밖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한 사람씩 나오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며 수험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무엇을 고쳤느니 못 고쳤느니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머리를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워드 2급 국가 공인 자격을 취득하고 있던 터이고 시험이 워드 자격시험 보다 훨씬 쉽게 출제되고 타이핑만 잘 하면 되는 수준이라고 듣고 있던 터라 아무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반주까지 한 잔 마시고 시험에 임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워드 자격시험처럼 지시문에 따라 고쳐서 타이핑해야 하는 것을 그대로 타이핑만 하고 나왔으니 낙제점일 수밖에 없었다. 후일 컴퓨터 과락만 아니었으면 합격 했을 것이라는 친구인 담당관의 말을 듣고서 마음은 더욱 아팠고, 다시 한 번 세상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되는 것이지 내 의지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절감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의 신앙심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수학교 발령의 기쁨도 잠시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일 다음에 나쁜 일이 따르는가? 19985월 아내가 우리 아파트 앞 큰 길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6개월간의 입원치료를 하게 되었으며, 위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일까? 나는 다음 해 공무원 건강 검진에서 고혈압과 당뇨병 위험 진단을 받게 되었다.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설탕물을 한 컵 마시고 재검사를 한 결과 의사선생님께서 괜찮습니다. 음식 주의하고 운동이나 자주 하세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그 때만 해도 건강은 물론 성인병에 무관심하고 무식했던 때라 나 역시도 별다른 주의 없이 원래의 식습관을 그대로 고수하며 지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평소와 다름없이 음주에 폭식, 간식은 단것으로만 먹는 나쁜 생활 패턴을 전혀 고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살기를 몇 년, 그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당뇨병, 고혈압 환자가 되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만약 지금이 고비입니다.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합니다.”라고 경고해 주셨더라면 어떠했을까?

    지금까지는 약물, 아내의 헌신적인 식이요법 제공 등으로 관리하면서 어렵고 고생스럽지만 양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위를 쳐다보면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이 한심스럽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내려다보면서 매사 감사해야지!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제 인생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면 이만한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살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1998년. 11월. 05일에는 광주 교육대학 총동창회 주관 기로서 광주교육대학 졸업 30주년 기념 사은회를 갖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새 유수같이 흘러버린 세월을 안주삼아 한잔 술에 삶의 우수를 타서 마시기도 하였다.

 

                                     교대 졸업 30주년 기념 사은회 기념 촬영

 

  연말은 승진을 희망하는 교사들에게는 항상 평정이 문제였다. 특수학교 근무 점수가 부가되는 나는 평정만 받으면 교감 자격 강습을 갈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애가 탔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스트레스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스트레스는 교감 자격증을 손에 쥐는 날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즈음 누가 나에게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교감 자격을 따는 것이라고 대답할 만큼 내 인생은 그렇게 메말라 있었고, 상황은 항상 그렇듯이 녹녹하지 않았다.

    근무는 열심히 하였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이고, 평정자의 생각은 또 다를 뿐만 아니라, 나는 본교 근무경력이 1년 밖에 되지 않아 짧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전임 근무자 중에도 근무를 열심히 하고 평정을 필요로 하는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근무평정을 1등으로 해달라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고마운 일이 일어났다. 대상자들의 자격연수 대상점수를 파악한 결과 평정순위를 바꾸어도 두 사람 모두 연수 대상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 결과 1위 대상자의 양해를 얻어 나를 평정 1위로 해 주었다. 참으로 나를 위한 과분한 관심과 배려를 베풀어주신 분들께, 특히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배려해 준 친구 교감 선생님께 지금까지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으나 보답에 소홀하여 송구할 뿐이다.   

 

                   북 유럽 여행중 즐거운 한 때

 

      그러나 이렇게 평정만으로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교육청의 연수 대상자 선발 인원수의 결정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어 지는 것이니 서열순위가 하위급인 나는 선발인원수가 많아지면 가능하나 줄어들면 탈락하게 되는 경계선급으로 오늘은 가능하다는 소식인가하면 내일은 불가능이라는 소식으로 애간장 녹이는 줄다리기가 며칠을 계속 피를 말리는 시간에서 동생 여산이의 역할이 작용함(?)으로써 가능성 있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교감 자격 연수 대상자가 되었고 성적도 좋게 자격 연수과정을 마치고 1999년.08월 1일자로 교감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 내 생애 최고의 기쁨이고 자랑이었다. 그 기쁨과 자랑을 기념하는 뜻으로 친구 가족과 우리 부부가 함께 ‘200008월16일부터 910일의 러시아 북유럽 여행을 하였으며 내 인생에 잊지 못할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 9월.1일자로 교감 임명장을 받고 교감 발령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