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지는 아이로 키우자

소광선생 2014. 6. 12. 15:54

 

           지는 아이로 키우자

 

  우리는 흔히 아이들에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한다. 아이들 역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특정한 지위에 오르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 훌륭한 사람으로 꼽지는 않는다. 훌륭한 사람이란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다. 지는데 익숙한 아이 져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 아이, 지면서도 또 남을 이해하는 아이가 진정으로 남을 위하고, 자기 직장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남에게 이기는 법을 뱃속에서부터 터득하고 나온다. 이기는 기질은 타고난 것이기에 어떻게 남을 따돌리고 이겨야 하는지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누구도 남에게 지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일부러 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외국에서는 부모에게 '자식을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으나'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겉으로는 겸손하게 '자기 밥벌이나 하면 되지'하고 말하면서 내심 의사 , 판 검사되기를 바란다. 솔직히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세속적 성공을 원하는 사람에게 지는 아이로 키우자는 말은 먼 산의 메아리일 뿐이다. 이기기도 바쁜데 지면서 언제 성공할 수 있으랴. 안타깝게도 세상은 더욱 열심히 아이들에게 이기는 법만 가르친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특히 가정교육의 문제는 어릴 때는 '오냐 오냐'(과잉보호)하다가 커서는 '안돼'(과잉간섭)로 바뀌는데 있다고 본다 가정에서 포기한 일을 학교에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미국과 일본의 학부모들은 학교란 기초 학력을 배양하고 진학이나 취업 준비를 위한 곳이라 생각하는 반면, 한국의 학부모들은 가정에서 해야 할 기본 예절, 규칙 지키기, 인간성 육성 등 인성교육과 생활지도까지도 아니 가정에서 망쳐버린 인성교육과 생활지도를 학교에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나아가 우리 나라 부모들에 팽배한 내 아이 기 살리기 교육은 버릇없고 이기적인 아이로 키울 뿐 아니라 심지어 폭력적인 아이를 만들기도 한다. 부모들은 한결같이 아이를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믿는데 그 믿음이 폭력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맞고 들어오면 '아니, 또 맞고 들어 왔어? 치료비를 물어줘도 좋으니 너도 한번 때려봐, 이 녀석아!' 하고 아이를 닦달하는 부모가 많다. 그뿐이 아니다 또 맞고 들어오면 태권도 학원을 다니게 하며 '너도 태권도 배워 다른 애가 때리면 실컷 두들겨 패!" 라고 가르친단다. 아이는 학년이 올라 갈수록 맞고 들어올 때보다 때리고 들어오는 횟수가 늘어나고 부모는 치료비를 물어주더라도 맞고 들어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힘만 믿고 친구들 돈을 빼앗고 패싸움을 벌인다. 주먹을 휘둘러서라도 남을 이기라고 가르친 부모는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이처럼 전쟁터에 나가 이기고 돌아오는 식의 '호전적 교육'에서 벗어나 남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자는 게 '지는 아이'의 개념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한 분유회사가 '내 아이는 다르다'는 광고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당시 한참 뜨고 있는 미시족을 내세워 '내 아이는 다르게 키우고 싶다'는 욕구를 부추긴 것이 주효했다. 이 광고는 소비자들이 뽑은 그해('94)' 가장 인상 깊은 광고'로 뽑혔고 해당 제품의 매출신장에도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유아-아동복 시장의 고급화 바람도 부추겼다.

결국 걱정대로 '내 아이만은 다르게'라는 욕망은 공공연하게 '남보다 우월함'을 내세우는 왕자병 - 공주병 -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96년에는 여기 저기서 왕자병 - 공주병 환자들이 외치는 '미나공(미안해 나 공주야)'이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IMF 위기가 아니었다면 자기 사랑의 극치인 공주병은 좀더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공주병이 후퇴한 대신, 잠복기를 거쳐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이번에는 영재 신드롬이 찾아왔다. 2002년 3월 '영재교육진흥법' 발효를 앞두고 이제 너도나도 영재 테스트를 받느라 야단이다. 덕분에 요즈음은 영재 아니면 준재라는 식의 이분법이 지배한다.

  우리 속담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라는 속담도 있는데 요즈음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일단 우리 집에 우리 아이는 누구나 우리 가정의 규칙을 지키도록 키워야 한다.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물 줘요'라고 시키지 않고 스스로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며, 이때에도 냉장고의 물이나 주스는 부모의 소유이므로 물을 마실 때 "물 좀 마셔도 되요?" 또는 "저는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물 한잔 갖다 드릴까요?"라는 식으로 허락을 받고 먹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아이는 물건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며, 부모님이 노력 끝에 사다놓은 사유재산임을 배운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상황조차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지는 아이'로 키우는 한 방법이다. 그래야 사회에 나와 남의 물을 얻어 마시고 고마워할 줄 안다. 집 근처의 약수터에서 물을 떠오게 하는 일 , 자신의 방을 깨끗이 하는 일, 마른빨래는 자신의 것을 스스로 걷어 가거나 접어두면 직접 자기 서랍에 넣어 두었다 필요시 내어 입는 일, 모든 음식은 반드시 부엌이나 식당에서만 먹도록 하며, 쓰레기는 반드시 쓰레기통에, 남은 음식물은 반드시 냉장고 또는 싱크대에 치우도록 한다. 단순히 주부가 편하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 앞으로 아이 혼자 살아 가야할 세상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다. 외출 시에는 가스, 전등, 보일러가 꺼졌는지 점검하고, 문을 잠그고 나가는 것은 몸에 배도록 한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도 모든 것을 점검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회인으로 자란다. 말로만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 이런 내용을 적어 벽에 붙여둔다. 일반적으로 14~5세 아동은 늦어도 9시까지는 귀가하고, 주말은 10시, 16세 이상은 주중 10시 주말 12시, 14세 이상 아동의 주중 취침시간은 10시, 그 이하는 9시, 주말은 1시간의 여유가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가정의 질서를 분명히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반항을 할 때는 벌을 준다. 주로 자신의 방에서 못 나오게 한다. 한 대 때리는 게 낫지 그게 무순 벌이냐고 하겠지만 10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아이들은 방에 갇힌 동안 자신이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라는 공포감도 느끼기 때문이다. 또 나머지 가족이 밖에서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 한다. 싸우거나 물건을 파손하거나 했을 때, 이 벌을 이용한다. 물론 아이에게는 적절한 보상도 필요하다. 대신 주말 외출, 친구 집 파티 등에 가고 싶다면 학교 성적을 일정 수준 이상 올려야 한다는 약속을 한다. 일주일에 책 1권은 필수로 읽으며, 한 번 이상 일기 쓰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귀한 왕자, 공주라도 사회에 나가면 하루 종일 하고 싶지 않은 일까지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세금을 내고 가난한 사람들과 땀의 대가를 나눈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집안행사에는 반드시 참석시키고 손님접대에 참여하고 대화를 나누도록 한다. 이처럼 어른이 되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귀한 내 자식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는 생각부터 버리자. 귀한 자식일수록 지는 연습을 시켜야 한다. 질 줄 아는 아이가 마지막에 이기며 지는 연습이 된 아이가 끝까지 가는 끈기가 있으며, 져본 아이들이야말로 인생을 즐기고 풍성한 감성을 지니며, 패배한 뒤의 쓴맛을 즐기는 여유를 배운다. 인생은 사실 진정한 패배도 없고, 진정한 승리도 없는 제로섬게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