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21.11.06 우리 형제자매 장충단공원, 남산북편길, 백범광장,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만추를 즐기다

소광선생 2021. 11. 6. 16:56

     장충단 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 열사들을 제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00년 11월 대한민국 고종이 설치한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기원으로 하며, 일제에 의해 1919년 공원이 되었다. 1900년 고종이 을미사변으로 순사한 내부대신 이경직과 연대장 홍계훈을 비롯한 호위 장졸들의 위패를 모신 장충단을 세워 매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가 1910년 일제에 의해 폐사되었다. 이후 민족정신 말살 정책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격하되었다. 6.25전쟁으로 장충단 사전과 부속건물은 완전히 소실되고, 장충단비가 남아 있다. 1984년 9월 22일, 건설부고시 제 374호 근린공원이 되어 현재는 남산공원의 일부로 흡수·합병되었다. 장충단 공원은 광장·놀이터·분수대 등의 공원시설과 석호정·장충단비석·이준열사동상·사명대사동상 등이 있다.

 

 

     원래 남산의 북편 일대는 조선시대 때 도성을 수비하는 군대가 무예를 닦던 '무예장'이 있던 곳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예장 터에 왜군이 성을 지어 '왜성대(倭城臺)' 또는 '왜장대(倭將臺)'라고 불렸다. 구한말 시기부터 경복궁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되기 전까지 왜성대 일대에 통감부 건물과 통감 관저(구 주한일본공사관)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경성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를 이루어 살았다.

 

 

     백범 광장은 남산에 있는 광장이자 공원으로 1969년 백범 김구 서거 20주기를 맞이하여 김구선생동상건립위원회의 주관으로 조각가 김경승, 민복진이 조각하여 1969년 8월 23일 백범 김구의 출생일인 8월 23일에 동상 제막식을 열면서 김구 선생상이 세워졌고 이 때부터 백범광장으로 명명하였다. 광장의 규모는 너른 잔디에 백범 김구선생상과 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상이 있으며 바로 옆으로 서울 한양도성 남산 성곽이 있고 위로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 정보연구원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신라의 명장 김유신상이 있다. 한때 이 곳은 일제가 세운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였으며 일제가 패망하고 광복을 맞으면서 조선신궁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 등이 들어섰다.

 

 

     덕수궁 돌담길은 계동이나 성북동길과 더불어 서울에서 역사의 온도가 가장 따스한 길이다. 족히 100년이 넘는 시간이 차곡하다. 정동교회와 신아빌딩, 이화여고와 배재학당이 들고나며 지난 시간을 읊어준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늘 사람을 품으므로 어미의 숨결인 양 푸근하다. 길이 이처럼 또렷한 역사를 간직하기는 600년 수도 서울에서도 드물다. 그 역사는 정동길과 어울려 한층 풍요롭다. 실상 정동길과 덕수궁 돌담길의 구분은 늘 모호하거나 헛갈린다. 공간의 중첩이다. 정동이 좀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 안에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길이 자리한다. 연인들을 불러내고 지친 이들을 품어준다.